현장스님, 대원사 티베트박물관장
티베트불교의 여유와 친절,
자비를 배워야 해요

“우리의 삶이 긴장의 연속이잖아요. 사실 심각할 것도 없는데 스스로 두려움을 조장하고 위기감을 만들어 내죠. 여기서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전남 보성, 천봉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한 대원사. 절의 중심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수행 도량 ‘아실암’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맞춰 대원사를 찾은 사람들이 스님의 깨알 같은 유머에 고단했던 일상을 훌훌 날려 버리는데…. 그렇게 잔뜩 옭아맨 마음의 긴장을 풀고 나니 현장스님(티베트박물관장, 대원사 회주)의 티베트불교 이야기가 시작된다.
“달라이 라마는 실제로 굉장히 유머러스해요. 그 에너지가 사람들을 매혹시키죠.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출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죠. 한데 직접 뵙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그건 티베트불교의 힘이었어요. 티베트 사람들의 여유와 친절과 자비! 그걸 배워야 해요.”
그 결단으로 티베트불교의 정신을 전하고자 걸어온 외길 25년! 
대한불교조계종 백제고찰이라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으로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버린 대원사. 그렇게 한동안 외면받았던 이곳을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된 건 순연히 현장스님의 일념이 만든 결과였다. “대중을 떠난 종교는 화석화되기 마련이에요. 종교도 이제 문화로 소통하고 나누어야 해요.” 새하얀 승복을 걸치고서도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스님의 말이 깊은 울림이 되어 세상 속으로 파고든다.

|대원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출가는 송광사의 구산스님 밑에서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해, 추석을 맞아 스승님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죠. 그때 보니 절이 다 소실되고 극락전만 남아 있더라고요. 스승님이 ‘이곳에 주인이 없으니 네가 맡아 보아라.’ 하고 권하는데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구산스님의 알뜰한 제자였던 현장스님은 사실, 법정스님의 조카이기도 하다. 불연만큼이나 귀한 혈연이 있었으니 아마도 출가의 연이 오랜 생을 통해 깊은 서원으로 뿌리내렸을 터.

| 대원사에 끌렸던 이유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갖추어진 게 없어서 오히려 더 희망적이었어요.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거든요. 신기하게도 그때는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첫해(1990년) 열었던 주말 템플스테이가 지금도 꾸준히 이어져 오는 것도 그렇고, 당시 소실된 지장전을 복원하기 위해 올린 낙태 영가를 위한 백일기도(연 2회)가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건, 2009년에 문을 연 티베트박물관. 대원사 방문이 처음인 사람은 진입로에 펼쳐진 벚꽃 가로수에 한 번 놀라고, 절 바로 아래에 웅장하게 서 있는 티베트박물관에 두 번 놀란다고 한다. 국내에서 제일 큰 티베트박물관이지만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과 전시품들은 모두 현장스님이 직접 수집한 거라 하니 더욱 그럴 수밖에.
절의 규모는 작지만, 특색 있는 건축물과 전시물을 통해 우리 고유문화유산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는 것 또한 큰 자랑이다. 태아령을 상징하는 수백 개의 아기불상이며, 단군의 어머니를 모신 성모각과 김지장(신라왕자)의 생애와 정신을 기린 김지장전, 황희정승의 정신을 담은 황희영각, 그리고 연꽃 단지가 그것. 이는 문화로서 열린 도량을 만들고자 한 현장스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잠깐의 인터뷰만으로도 그의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지만 스님은 켜켜이 쌓인 사연을 뒤로 한 채, 다시 티베트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달라이 라마와의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1987년에 7개월간 동아시아 불교국가를 여행한 적이 있어요. 아주 뜨거운 여름이었죠. 더위를 피해 간 곳이 다람살라였어요.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는데, 당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죠.” 하지만 그가 느낀 티베트불교 수행자의 삶은 벅찬 감동이었다. 그때의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불교 승려들의 모습을 찍은 게 그의 삶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 이후 티베트박물관 건립을 제의받고, 본격적으로 유물과 미술품 등을 수집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달라이 라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절에 가지 말라고 하거든요. 자신 안에 있는 절을 발견하라는 거지요. 그게 바로 ‘친절’입니다. 굉장히 명쾌하죠.”
모두가 다 부처라는 처처불상(處處佛像)의 수행법이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다. 다시 이어지는 그의 말, “삶의 목표가 뚜렷한 거죠. 그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스승을 만나러 가는 차비와 공양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에요. 법회가 열리는 날은 누구나 하던 일을 멈추고 법회장으로 가거든요. 수천수만 명이 모여들어요.”



|삶이 곧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네요.
“인과를 아는 거죠. 짓지 않은 복은 받을 수 없고, 닦지 않은 지혜는 밝아지지 않아요. 이생의 삶이 끝이 아니라, 이생에 지은 복과 지혜가 내생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거죠. 그들은 나이 50이 되면 평생 가정을 위해 살았던 삶을 자식에게 넘겨 주고 공부길을 떠나거든요.” 욕을 할 줄 모르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가장 심한 말이 두 가지 있다는데….  그것은 바로‘지혜가 없는 사람’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이란다.

|스승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법을 닦아 자비로워지면 자신의 몸이 깃발이 되어, 누군든 자신을 스쳐 간 바람만 맞아도 복을 받고 지혜로워진다고 해요. 그런 수행자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행복이죠. 그래서 복이 없는 사람은 좋은 스승을 보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템플스테이를 통해 그런 수행도량을 만들고 싶으신 거네요.
“네, 그렇지요. 우선 준비하는 저부터 자세가 달라지거든요. 템플스테이를 연다는 건 부처님을 영접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자기 정화의식이 선행되어야 해요.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모두 하나가 되어야 정화가 되고, 일치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현장스님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서구적 교육방식으로 모든 걸 프로그램화하고 단계별로 나누어, 오히려 수행했다는 자만심을 갖게 하는 것이란다. 수행을 할수록 비울 줄 알아야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 그래서 스님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 사경과, 부처그림을 그리는 사불을 가장 중요시한다.

|선이란 무엇인가요?
“선은 곧 ‘보시(報施)’에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데 전력을 다하지만 정작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잘 몰라요. 마찬가지로 힐링캠프(템플스테이)를 통해 몸의 세포를 깨우고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면, 그 몸과 마음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해요. 쌓기만 하고 나누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티베트 사람들은 복을 닦는 일이야말로 재산을 장만하는 일로 본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공부에 더 매진하려 한다고. 그들에게 치매나 노인성질환이 적은 이유다. ‘죽음의 보따리’가 영생의 복전임을 아는 것처럼.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경계에 흔들린다는 건 마음에 중심이 없다는 거예요. ‘의지할 스승’이 없는 거죠.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기도를 할 때 ‘의지할 스승을 만나게 해 달라.’고 발원을 해요. 만약 스승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만심 때문이에요. 탐·진·치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 자만심과 의심이거든요.”

|자만심, 욕심을 버려야겠네요.
“티베트불교 승려들은 제자들이 질문을 해오면 ‘나는 잘 모르지만 나의 스승께서 이렇게 얘기하셨다.’라고 서두를 시작해요.‘여시아문(如是我聞)’의 법문을 설하면서 항상 스승과 맥을 이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나의 잣대로 법문을 설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법문에 의지하여 법을 전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놓는 공부를 하는 거죠.”
이처럼 티베트불교 승려들의 진실한 수행과 정신이 불교계가 다듬어가야 할 모습이라며 마지막 당부를 하는데…. “앞으로는 제복의 틀과 제도의 틀을 넘어선 진실한 수행자만이 대중에게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