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다        름,
내 마음에는 무슨 색을 입힐까?

반월도&박지도 잇는 퍼플교

취재. 노태형 편집인

섬들 뒤에 꼭꼭 숨어있던 섬이었습니다.
기껏해야 해질 무렵 잠시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내 수줍은 듯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죠. 반달이 잔잔히 바다 속을 헤엄치는 밤이면 동네 처녀는 파도소리 한 바가지 퍼올려 멱을 감습니다. 뭍으로 나갈 생각도, 섬으로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리움을 씻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더 신비롭고, 그래서 또 우울함이 보라보라한 색으로 피어나는 반월도&박지도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낸 어느 할머니의 소망은 “두 발로 걸어서 육지로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바람 부는 날이면 파도가 실어 나르고, 달이 뜨는 밤이면 반달이 그 꿈을 퍼올려 퍼뜨렸겠죠.

무수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간 소망이 곳곳에서 보랏빛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저 꽃이 어디에서 온 거야.” 그 응답이 2007년도에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신안군에서 모섬인 안좌도와 남매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를 잇는 1.46㎞의 목조다리를 놓은 거죠.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은 박지도와 반월도에 왕도라지꽃, 꿀풀꽃 등 보랏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에 주민들은 “우리 섬을 어떻게 ‘색다르게’ 할까?”를 고민하다, “보라색으로 특색 있게 꾸며보자”며 머리를 맞댔죠. 그래서 마을지붕과 창문테두리, 창고와 담벼락, 심지어 식기와 커피 잔까지 보라색으로 치장해 퍼플(보라)섬을 만들었습니다. 섬을 잇는 다리를 보라색으로 칠한 건 당연한 것이고요.

그런 감응이 닿은 것이겠죠. 몇 년 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천사대교(10.8㎞)가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면서, 할머니의 소망은 이제 안좌도-팔금도-암태도-압해도를 거쳐 두 발로 걸어 뭍에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뭍에서 보라색 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섬을 돌며 ‘보랏빛 꿈’을 안고 돌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해졌죠.
그리고 두 섬은 봄부터 가을까지 보랏빛 식물이 가득한 육지가 되었습니다. 보라 유채와 자목련, 라일락, 박태기, 라벤더 정원, 아스타 국화 군락지, 보라색 루드베키아 등 20만주 이상의 보랏빛 식물이 섬 안을 가득 채운다는군요. 물론 보랏빛으로 바다 위에 떠있는 퍼플교만 거닐어도 충분히 호사가 됩니다.

퍼플교 옆에는 개펄 위로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희미한 바닷길이 있습니다.
섬과 섬을 잇는 이 노둣길은 옛날 반월도 사람들과 박지도 사람들이 썰물을 이용해 서로 왕래하던 징검다리 길이었다고 합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바닷물에 잠기지만 썰물이 되면 개펄 사이로 바위들이 언덕처럼 솟아올라 길을 냈죠. 이 길에는 애틋한 사연이 전설로 흐릅니다.
옛날 어느 적, 반월도와 박지도에는 서로 마주 보이는 곳에 젊은 비구 스님과 비구니 스님이 살았다고 합니다. 맑은 날이면 섬 너머로 희미하게 서로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또 달 밝은 밤이면 스님들의 청아한 독경소리가 바다를 건너 어렴풋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애틋함이 싹텄고 그건 다시 그리움이 되었죠. 어느 날, 반월도 비구 스님이 망태에 돌을 담아 박지도 쪽으로 부어나가기 시작했고, 그걸 본 비구니 스님도 개펄에 돌을 쏟아 바닷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많은 세월이 흘러 드디어 바다 가운데에서 두 스님은 노둣길을 놓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바다가 그들을 질투했나 봅니다. 갑자기 밀물이 몰려오면서 두 스님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흔적이 없어졌다죠. 지금, 그 길 위에는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들이 애틋하게 자식을 기다리며 굴을 따는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색 하나가 이렇듯 우리 마음을 끕니다. 그 흔한 색 하나가 그곳에선 특별한 색이 되다니, 참 신기하죠.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색을 입혀야 더 빛이 날까요?
문득, 당신이 가진 색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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