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글. 최미원 전 중학교 1학년 때는 영어를 꽤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다른 반 아이들도 저에게 와 영어 공부법을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2학년 올라가서는 영어에 손을 놓게 되었어요. 1학년때는 영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공부라기보다는 놀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했는데 2학년 영어선생님은…. 영어에 대한 흥미가 뚝 사라져 버리더라구요. 제가 영어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했었더라면 선생님과는 상관없이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요. 제가 새해에 받은 법문은 솔성요론 1조 ‘사람만 믿지 말고 그
글. 이주리아 어제 아침엔 앞마당을 돌아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갈색으로 바싹 마른 국화꽃 아래 벌써 초록색 새순이 올라와 있지 뭡니까? 그러고 보니 나무나 철쭉의 꽃눈도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네요. 동네를 산책하다 이웃집 마당에 초록색 새순이 무더기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싶어서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세상에… 수선화다!” 저의 외침에 옆에 있던 남편과 딸이 투덜댑니다. 뭔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왜 사람을 놀라게 하느냐고 말이죠. 사실 제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답니다.작년 이맘때쯤 준비 없이
글. 최주원1월 치고는 비교적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산뜻한 바람이 나를 반겨준다. 2박 3일간 진행하는 훈련은 처음이라 설렘과 걱정이 공존했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도착한 곳은 영광에 위치한 국제마음훈련원. 대충 둘러봐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구조물과 고즈넉한 명상 공간들. ‘나 최주원! 이곳에서 분명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하는 강한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짐을 풀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삼밭재였다. 가벼운 뒷산, 아니 동산 정도로 생각하고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한 10여 분 정도를 쉬지 않고 올라
글. 김도영 교단 제4대가 시작되는 올해, 분에 넘치는 동진주교당 교도회장직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할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봉사해야 할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교도님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앞으로 일이 있을 때마다 교무님과 원로님들 그리고 교도님들과 소통하며 발전하는 교당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당이 이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우리 교당 발전을 위해서 화합과 멋있는 만남의 장이 되는 분위기 조성입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면서 서운한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
원불교로 얻은 힘글. 유상인 저는 어렸을 적 가족들과 교당을 다니며 원불교에 입교했습니다. 현재는 군복무의 의무를 다하며 주말에는 마음공부를 하며 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역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해를 돌아봅니다. 처음 입대해서 어색한 환경과 심란한 마음에 어머니의 조언으로 원불교에 나가게 되었고, 안법열·안경효 교무님과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3사단 군종장교인 정효천 교무님까지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군생활의 시작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매주 법회를 보며 일상수행의
용기의 발판글. 안준혁 항상 자대에서 감정과 목표가 없이 작업과 훈련만을 매일 반복하는 내게 ‘힐링캠프 파견’이라는 또 하나의 길이 생겼다.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다. ‘나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나만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하지만 20대 청춘을 이곳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다 줄 것 같다는 확신도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22살 인생 처음으로 나 자신 하나만 믿고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24일 힐링캠프에 분대장이라는 직책으로 파견을 왔다
우리 아빠, 우리 아빠글. 최경아 우리 아빠는 정말 법 없이도 사실분입니다. 우리 아빠여서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아버지는 빈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뒤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안 해 본 일 없이 일하며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청년기에 들어서는 일하며 검정고시공부를 해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냈지요. 좋은 기회에 신문사 광고국에 입사하고서도 아버지는 열심히 사셨습니다. 대졸자들과 잘난(?) 사람들의 무시에도 나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무시를 벗어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따내
글. 장성문 햇볕이 쏟아진다. 눈이 떠지며 온몸에 볕이 퍼진다. 따사롭다. 몸을 움직여본다. 소중한 관절과 근육이 밤새 녹슬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간단한 스트레칭. 몸을 털고 호흡을 들이마시며 폐를 스트레칭 한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찬물샤워 후 온몸으로 잠시 햇볕을 받는다. 햇볕샤워. 차가워진 몸이 이내 따뜻해지며 생명에너지가 충전된다. 출발이다. 충만한 하루를 위한 출발.나의 천천히 가는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 업무에서도 천천히,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언젠가는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했던
글. 박도기우리는 때로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란 stop과 다르다. 새로운 출발과 마음가짐을 위해 돌아보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번 하섬 훈련은 내게 쉼표와도 같았다. 그간 꾸준함과 성실함은 미덕이라 생각하며 쉼표 없이 달렸던 것 같다. 대학생활도 스스로 부끄럼 없이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 잘해온 만큼 임용고시도 금방 붙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작년 시험을 포함하여 불합격이라는 고배를 2번 겪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나에게 맞는 직업인지 의문도 들었고,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나의 다짐을
글. 유진아오늘은 나상호 교정원장님을 모시고 전곡교당 봉불 1주년 기념 법회를 보는 날입니다. 교무님으로부터 공부담을 권유받고 저의 신앙생활을 정리해 봅니다. 이런 내 모습을 마주하니 ‘내가 조금 더 공부인이 되었구나’ 생각되고 대견하다 칭찬해 봅니다. 원불교와 처음 인연이 된 것은 22년 전. 시골에 살아 자녀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비 5천원만 내면 변산까지 1박 2일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원불교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과 딸이 한자를 배우는 ‘마음학교’라는 곳이
글. 박용화 여름방학을 맞아 김포교당 학생회는 부산에서 교당 자체 학생 훈련을 진행했다. 이어 중·고등 신성회에도 참석했다.이번 훈련은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우리 학생회에 굉장히 뜻깊은 훈련이었다. 부산으로 간 학생회 훈련은 윤미승 교무님과 학생회원들이 함께 계획을 세워 진행했다. 부산에서 어디를 둘러볼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 할지부터 식사 메뉴까지 학생회원들도 의견을 내고 함께 의논하여 일정을 만들었기에 훈련을 굉장히 기대하게 되었다.부산에서는 하단성적지, 부산원음방송국, 남포동 일대와 해운대해수욕장, 영
글. 박도선 엄마는 60대 후반 허리 수술을 했습니다. 그것은 78세까지 여러 번 이어졌습니다. 거듭된 수술 때문인지 마지막 수술 이후에는 일어설 수도 눕지도 앉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수발을 다 해야 하다 보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가족들은 상의를 해, 가기 싫다고 엉엉 우는 엄마를 시설에 모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되어 답답한 마음뿐이던 그 때, 그곳에서 요양보호사를 구했습니다. 저는 얼른 입사를 했습니다. 직접 가서보니 엄마는 요양원에서 아주 젊은 색시였습니다. 평소 성격이 깔끔한 엄마가 모든 것을 침
글. 강덕훈 오늘은 날이 참 좋다. 하늘엔 구름이 적당히 있고, 비도 적당히 내린다. 특별히 비오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좋게 느껴진다.사실 요즘엔 어떤 날씨이든 좋게 느껴진다. 찌는듯한 무더위도 좋고 더위에 에어컨 틀어놓고 가만히 있는 것도 좋았다. 더위에 땀 흘려가며 삽질하는 것도 행복하다.출가 후 교당에서만 부교무, 보좌교무로 15년을 근무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주임교무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뭐든, 그 어떤 상황이건 다 좋아 보이는 것이려나.^^나는 교당이 참 좋다. 출가 후 첫 목표는 ‘성불제중’이었다. 행복이
글. 맹소연 결혼 14년차, 세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가 되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주변 갈등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법, 내 감정을 다스리는 법 등이 그것이다.홀로 식당을 운영하신 엄마는 식당을 남동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동생도 하던 일을 접고 부부가 식당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상이몽이라고 하던가. 엄마와 동생은 얼마 가지 않아 삐걱거렸다. 몇 십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한 엄마는 시시콜콜 일을 가르치려 했
글. 홍재이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날개가 달려 있겠지, 푸른 하늘 위로 새처럼 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비행기도 필요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 속의 욕심도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 질까’ 노래 제목은 모르겠지만 멜로디는 익숙한데 무엇보다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 바로 스마트폰에서 음악 검색을 눌러서 찾아보니 가수 전영이 부른 ‘모두가 천사라면’이라는 노래다. 1983년에 나온 노래라고 하니 40년이 된 노래
글. 양순녀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대만 어학연수. 7월이라 출발 전에는 어학연수에 대한 기대보다는 떠나기 힘든 이유만 잔뜩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대만은 볼 것도 없고, 최고로 더울 때이고, 너무 습하다는 등 한소리씩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만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 양만기 교수님 지인들이 손수 제작한 현수막을 보면서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현수막에 손수 그림을 그려 환영해 주셔서 감동이 배가됐다. 특히 대만 정부에서 관광유치를 위한 상품권도 우리 일행 15명 중 14명이 당첨되어 선물을 받았다. 어학연수생들
다시 여름을 맞이하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 생에 몇 번째 맞이하는 여름인지. 나도 참 오래 살았다. 계절은 자꾸 변해 가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가는 시간을 헤아려 보니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갈 일만 남았구나’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이 법을 만나 공부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 가득할 뿐이다. 입교 후, 신입교도가 되어 인과에 대한 법문을 처음 받들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이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공부를 해 오고 있다. 논밭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눈·귀·코·입·몸·마음을
여름날 출근을 하다 보면 회사까지 가는 걸음이 지치기도 한다. 더워서 땀이 나도 투덜, 비가 와도 투덜대며 입이 가득 나온 채로 출근을 하면 벌써 지쳐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또 회사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하다 보면 가장 크게 실망할 때는 내가 생각한 기대와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였다. 그 기대가 클수록 실망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대종사님께서는 “마음이 허공같이 비고 보면 윤회의 승강을 벗어나나니, 이 빈 마음을 근본하면 항상 진급이 되고, 이 빈 마음을 바탕하여 상(相)을 떠나면 항상 은혜를 입게 되나니라. 언제든지 은혜 입혔다는
올해 여든 여섯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나에게 신(법신불)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고, 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의 대상이었다. 사춘기를 접어들면서 어머니와 여전히 관계는 좋았지만, 어머니는 나의 반항이나 거절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대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다.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실패의 경험을 맛보았다. 불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때부터 내가 직업을 빨리 갖기를 강요했다. 나는 부랴부랴 직업을 찾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재촉에 학습지교사를
글. 이순주 기적도 일어났다. 남편이 일찍 귀가했고두 딸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 나는 시골에서 아들 하나 없는 일곱 자매의 맏이로 자랐다. 아버지가 일찍 열반하시어 어머니와 함께 여섯 동생을 가르치고 결혼시키느라 나름대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이제 모두 가정을 꾸려 그런 대로 잘 살고 있다. 셋째는 여군에 들어갔는데, 어찌어찌하여 스위스 부자를 만나 그곳에서 아들을 낳고 부유하게 살고 있기도 하다.다만, 바로 아래 둘째 동생이 걱정이었다. 남편은 사업한답시고 술만 마시고 새벽 2시나 되어야 귀가하고, 두 딸들은 공부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