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민재 아침부터 냉장고를 뒤져 냉동 새우를 찾았다. 꽁꽁 언 분홍빛 몸체들이 얼음 뭉치와 함께 뒤엉켜있었다. 혼자 먹는 점심은 대충 때우기 마련이어서,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한 것을 먹기로 한 것이다. 오늘이 특별한 날이어서는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오전 업무를 마치고 방에서 나와 부엌에 섰다. 실은 오전 업무를 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시간은 오후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아침에 꺼내놓은 새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두었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글. 김정탁 어질지 못한 사람을 마구 나무라선 안 된다공자가 말했다. “용맹함을 좋아하고 가난함을 아파하면 그는 분명히 반란을 일으킨다. 또 어질지 못하다고 그를 심하게 미워해도 반란을 일으킨다.” 子曰:「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태백」10) 공자가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언급한다.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자는 여기선 개인적 차원과 관련해서 언급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건 그가 용맹함을 좋아하고 가난함을 아파해서다. 즉 자신이 처한 가난한 상황을 못마땅히 여기는데
글. 임병학 교수·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선천과 후천은 후천개벽(後天開闢)과 연계되면서 한국 신종교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원불교의 핵심 경전인 『정전』이나 『대종경』에서는 선천과 후천에 대한 말씀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대종경』 변의품에서 제자의 질문에 ‘후천개벽’이라는 말이 나오고, 대종사님은 대답에서 ‘그럴듯하니라’라 하셨다. 『대종경선외록』에서는 같은 질문에 ‘근가(近可) 하니라’라 하여, 옳음에 가깝다고 하였다. 이에 선천과 후천의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선천 음(陰)과 후천 양(陽)『대종경선외록』 제10. 도
글. 김상수 의학박사 원기 76~81년(1992~1997) 약 5년 6개월 동안, 대산 종사님 생존시, 주치의인지라 새벽마다 영모묘원 조실을 방문했다. 조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앞 벽면에 ‘방원합도’ 그림이 있었다. 그때는 원은 하늘, 사각형은 땅으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1924년(갑자년)은 후천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 시대를 소태산 대종사는 원시 반본(전망품 30장), 심판기(부촉품 4장), 장년기(교의품 14장)라 하셨다. 그 내용을 분류해 보니, ‘a. 이 시대는 전 세계 인류의 지견이 발달되는지라 (과학의 발달
훌륭한 작품 앞에서는 어떠한 지식이나 사고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글. 김승희 겨우내 움츠려 지냈던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이미 고인이 된 전시회의 주인공은 오래전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은사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와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아내나 딸이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지 적잖은 염려를 하면서 전시장을 찾았다. 왜냐하면 그는 주로 실험적이며 경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
글 박정원 서울대 아시아브리프 편집위원 무엇이 생명 이전과 생명 이후를 가를까, 무엇이 의식 이전과 이후를 만들어 낼까? 고대부터 존재해 왔던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에 관한 논란과 종교에 대해 얘기해 보자. 특히 영혼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종교의 존재 이유까지 설명한다. 고대사회에서는 하늘과 통하는 영매가 통치자와 일치했다. 제정일치사회였다. 하늘의 뜻이 곧 나의 뜻이라는 개념으로 통치를 합리화했다. 그 영매자들은 하늘과 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 번씩 주민들의 고민,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 혹은 그 결과까지 예
글. 이성심 편집인 ‘원불교의 매력은 현란한 레토릭(rhetoric) 즉 화려한 문체나 다소 과장되게 꾸민 미사여구에 있지 않고 실천적 소박미에 있다.’ 책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 말이다. 책 내용을 좀 더 인용하고자 한다. 종교 본래심을 일깨우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이 원광대 한의대 학생일 때였다. 당시 총장의 요청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제목이 ‘원불교는 상식의 종교다’였다. 그는 ‘상식보다 더 보편적이고 위대한 의식은 없다. 종교는 상식을 깨는 것인 양 생각하는데 원불교는 상식을 궁극적인 가치
글·사진. 박정원 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죽음은 종교의 존재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신화적 요소이다. 인간이 가장 궁금해하는 죽음 이후의 내생을 종교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내용은 완벽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양 종교인 불교, 유교, 도교에서도, 그리고 원시종교에서도 항상 죽음은 신화와 연결된다. 일본의 민속학자 오바야시 다라(大林太良)는 죽음과 관련한 세계의 신화를 몇 가지로 정리한 게 눈길을 끈다. 인간이 신의 명령을 위반했기 때문에 죽음이 생겼다는 형과 신이 인간에게 불사(不
글. 김정탁 공자의 수신과 처신법 공자가 말했다.“독실하게 믿고서 배우길 좋아하고, 올바른 도리를 죽을 때까지 목숨 걸고 지킨다. 그렇지만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혼란스러운 나라에도 살지 않는다. 또 천하에 도가 있으면 출사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그리고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내가 가난하고 천하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내가 다른 사람의 부귀를 함께 누린다면 이도 부끄러운 일이다.” 子曰:「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
일원상을 향한 애틋한 청정심은나와 내 주변을 정화하고 화평하게 한다. 글. 여도언 삶이 마음에 절망을 안겨 생채기를 낼 때, 고난을 줘 몸서리를 치게 할 때 우리는 어떤 가피처(加被處)로 찾아가야 하는가. 거기에는 마땅히 평온 축복 지혜가 가득해야 한다. 삶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게 하며 잘 살아갈 자신감을 안겨주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진보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십승지(十勝地)로 들어가야 한다. 흔히 최고의 피난처로 알려진 십승지는 사실 첩첩산중
글. 임병학 교수·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36과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구궁도(九宮圖)지난 호에서 36(三十六)은 하늘의 작용인 용구(用九)에 기본 작용인 사상(四象)을 곱한 수임을 알 수 있었다. 용구(用九)는 낙서(洛書)의 체십용구(體十用九)에 근거를 둔 것으로, 『주역』의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와 구궁도(九宮圖)의 이치와 만나게 된다. 낙서(洛書)와 문왕팔괘도는 1에서 9까지의 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쪽에서부터 보면, 2-9-4, 7-5-3, 6-1-8이다. 가로와 세로, 그리고 대각선으로 합하면, 모두 15가 되는 ‘3×3
글. 김상수 의학박사 일원상, 언어도단의 입정처소태산 대종사는 길룡리 간석지의 방언 공사 후, “우리가 건설할 회상(원불교)은 과거에도 보지 못하였고,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회상이라” 말씀하시고 새 법은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고”(서품 8장)라고 하셨다. 이에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의 새 법(회상)을 공부할 때, 첫째 선천의 여러 종교와 비교도 해야 하지만, 비교와 동시에 무엇이 다른가를 찾아야 대종사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날마다 새롭게 발전하는 과학에 맞추어 공부하여 소태산 대종
글. 이성심 편집인 과거에는 물질이 가난했는데 지금은 정신이 가난(빈곤)한 지경이다. 거기에 더하여 곳곳이 사람 가난이다. 국가의 인구 정책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휴원과 폐원이 많아졌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도 통·폐합을 하고, 지방 대학은 문을 닫는 실정이다. 지자체마다 아이가 태어나면 주겠다는 공약금이 점점 높아진다. 빈집도 늘었다. 청·장년이 귀농하면 정착금을 주는 시대다. 여기저기 사람 가난이다. 행사를 하려해도 사람이 모여야 한다. 모이는 곳은 유명 쇼핑몰과 흥미 있는 곳뿐이다. 흥미만 쫓으니 정신 가난
글. 서민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명품은 못 사고 딸기는 먹습니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익명의 글쓴이가 자신의 소득 수준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한 문장이었다. 4인 가족이라고 말한 글쓴이는 자신과 자기 가족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어떠한 숫자도 쓰지 않고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한 문장이었지만, 그저 그런 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수많은 이야기와 삶의 서사를 힐끗 드러내는 경제적 은유였다. 나는 그 표현의 참신성에 놀라면서도 두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아이가 딸기를 너무 좋아한다며 쓴웃음 짓는 한 부모의
글. 김정탁 증자가 병에 걸리자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증자가 말했다. “새가 죽음에 임하면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음에 임하면 말이 착하다. 그래서 군자가 소중히 여겨야 할 도는 세 가지다. 표정이 움직일 때는 포악하거나 교만함을 멀리해야 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할 때는 신실함에 가까워야 하고, 말이 나올 때는 비루하거나 어긋난 말을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제사 일은 담당 유사에게 관장토록 해야 한다.” 曾子有疾,孟敬子問之.曾子言曰:「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動容貌,斯遠暴慢矣;正顔色,斯近信矣;出辭
글. 임병학 교수·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2024년은 원기 109년으로 교단 제4대(代)를 시작하는 해이다. 교단의 제1대는 36년을 기준으로 하는데, 36(三十六)의 역학적(易學的) 의미를 2회에 걸쳐 생각해보고자 한다. ‘법의 대전과 창립 한도’에서는 “원기 3년(1918·戊午) 10월에 대종사 새 회상의 창립 한도를 발표하시니, 앞으로 회상의 대수(代數)는 기원 연수(紀元年數)로 구분하되, 매대(每代)를 36년으로 하고, 창립 제일대(第一代) 36년은 이를 다시 3회(回)로 나누어, 제1회 12년은 교단 창립의 정
글·사진. 박정원 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종교의 기원이 되고, 육체의 내적 존재가 되는 영혼.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육신이다. 영혼과 육체는 인간을 이루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런데 영혼은 존재한다고 대부분 믿고 있지만 이를 본 사람은 사실상 없다. 육신은 보이는 형상 그 자체이다. 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이 법신은 색체(色體)이기 때문에 모든 물질에서 능히 나타나고 있다. 본래 물질과 정신은 둘이 아니다. 물질의 성질은 지혜와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 물질에 의하
참다운 개벽의 성자는 주변을 참 낙원으로 만들어가는 사람 글. 권정도 부처님의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단지 개인의 내적 완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의 지혜는 반드시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서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것을 말한다. 곧 자비의 실천이 없는 깨달음은 참다운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사회 나아가 전 생령을 구제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다운 불법이 세상에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부처님 열반 후 불교는 일시적
글. 김상수 의학박사 제4개벽 윤리(緣·거래=피은)개벽만유(묘유)는 피은(indebtness·빚쟁이)의 관계로 짜여 있어(큰 그물=모눈종이), 서로 관계하여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알려 주심(개벽)-진공 묘유(유·무)는 나의 부채(debt)이므로 부채를 갚아야 한다(나는 사은에 빚쟁이). 우리가 원망 생활을 할 수 없는 이유(I)다. 제5개벽 육도, 생사, 삶 개벽소태산 대종사는 이 세상(진공묘유의 조화가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3D 무량세계·3D infinite world)을 유상과 무상의 면으로
글. 서민재 콩!콩!콩!콩! 바닥이 울린다. 콩!콩!콩!콩! 누군가 콘크리트 계단을 빠르게 두드린다.콩!콩!콩!콩!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순식간에 젊은 여성 한 분이 내 옆을 지나갔다. 겨울바람만큼 빠르고 차갑게.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녀의 플랫 슈즈가 기차역 계단을 빠르게 딛는 소리였다. 넘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서둘러 KTX 타는 곳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다급함에 비해 발걸음이 빠르지 못해 안타까운 건 나도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기차를 잡을 수 있을까? 아래쪽으로 보이는 기차는